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韓国語教育検定試験)の勉強のために、整理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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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자표기
⚠️ 국어사는 언어를 연구하는 분야라 문자하고는 분리되는데 말소리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문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임.
1.1. 고유명사 표기
韓国語にも、訓読み(석독)、音読(음독)みがあった
漢字を使っていたけど、地名や人名は韓国語を漢字で書かないといけないのでその規則を定めた。
- 大山 → 韓山
- 대(大)は、訓読みで、'한'と発音していたので、その場合は 한(韓)とする。
1.2. 이두
地名、人名だけでなく文章も漢字で書きたい!
でも、中国語とは語順が違うので、SOVの韓国語の語順で書いたもを 이두 という
発展系は助詞も漢字でかく
- 예) 蠶段 陽物是乎等用良 水氣乙 厭却 桑葉叱分 喫破爲遣 飮水不冬
- 누에는 양적인 생물이기 때문에 물기를 싫어해서 뽕잎만을 먹고 물을 먹지 않는다.
- 조사나 어미, 어순이 한국어와 같다
1.3. 향찰
もっと韓国語に近く書こう!として考察
実質的な意味を持つ部分は訓読みで、文法的な要素は音読表記を原則にして、主に향가 (固有の詩歌)で使われた
複雑で難しいわりには完全には表記できなかったので고려 전기までしか使われず消えた
- 예) 夜入伊遊行如何
- 발음) 밤-들-이-놀-니-다-가
1.4. 구결
漢文を読むときにその意味や文法的関係を表示するために入れる要素、助詞や語尾。
主に漢字を略字で書いた : 차자 구결
漢文を韓国の語順の通りに直して読む석독 구결と、漢文のまま読む음독 구결がある
한글창제後にはハングルで表記された : 한글 구결
- 原文) 復有五道一切衆生
このように間に、漢字の略字を入れて、助詞や読む順序を記した
2. 훈민정음🇰🇷
2.1. 훈민정음의 창제
1443년 (세종 25년) 12월 세종에 의해 직접 차제 : 세종 실록
1446년 (세종 28년) 9월 훈민정음 해례본의 간행을 통한 반포
最近はセジョン大王が作らせたのではなく、直接関与したという説が有力(実録)
2.2. 훈민정음의 체계
2.2.1. 초성
초성 글자는 모두17글자
2.2.2. 중성
중성은 11글자
기본자 (3자)는 '하늘・, 땅 ー , 지 ㅣ' 을 상형하여 만들고 이들을 합하여, 'ㅗ, ㅏ, ㅜ, ㅓ'의 초출자 (4자)와 'ㅛ, ㅑ, ㅠ, ㅕ' 의 재출자 (4자)를 만들었음.
- :|のように書いてたけど今は、ㅕのように引っ付けて書く
2.2.3. 종성 및 기타
- 종성은 글자를 별도로 만들지 않고 초성을 다시 쓰도록 하였음
- '각' 초성의 ㄱ과 종성의 ㄱ이 음성학으로는 다른 음이지만 음운적으로 같은 소리로 해서 글자 갯수를 줄일 수 있었음.
- 중국에 성운학에서와 같이 성모와 운모로 2분하지 않고 초성, 중성, 종성으로 3분하였으면서도 종성과 초성의 관련성을 파악한 것은 훈민정음의 중요한 특징임.
- 연서 규정을 두어 글자를 합쳐 새로운 음을 표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음. 縦に文字を並べるやつ
- 초성을 여러 글자를 쓸 때에는 병서하도록 하였음. 중성과 종성도 마찬가지임. 横に並べるやつ
- ㄱ -> ㄲ , ㅗㅏㅣ -> 왜 , ㄹㄱ -> 닭
- 방점을 사용하여 성조를 표기함.
2.2.4. 표기법
15세기의 한글 표기법 : 8종성 표기나 연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소리나느 대로 적는 음소적 표기법이 일반적임.
- 기프니 (15세기) → 깊으니 (현대)
- 깁고 (15세기) → 깊고 (현대)
文字の左側に点をつけて성조 (高低)を表した
- 평성은 무점 - そのまま
- 거성은 1점 - 高い音
- 상성은 2점 - 低いから高いへ
🌟 まとめ 🌟
- 차자표기에는 고유명사 / 이두 / 향찰 / 구결 등이 있다.
-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에 의해 직접 창제되어 1446년에 반포되었다.
- 훈민정음은 창제 당시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모두 28자였다.
- 15세기의 표기법은 소리나는 대로 적는 음소적 표기법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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